Warning: preg_match() [function.preg-match]: Compilation failed: missing ) at offset 136 in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 on line 507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lib/common.lib.php on line 98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2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4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5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6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7

Warning: Cannot modify header information - headers already sent by (output started at /home/gaeulpen.com/www/gnu4/common.php:507) in /home/gaeulpen.com/www/gnu4/head.sub.php on line 38
기본 > 신춘문예 작품들 > 2007년 신춘문예(시) 시인 추경희
  2007년 신춘문예(시)
  글쓴이 : 추경희 날짜 : 07-02-22 00:49     조회 : 1194    
(농민신문)

호두, 그 기억의 방/최옥향



굴곡진 삶
지도위의 협곡같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안은 둥근 동굴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하나 싹 틔울 씨눈조차 보이지 않게
으스러져라 껴안고
골마다 바람도 없이 풍장되어 가던
깜깜한 벽속의 간극을 재어 보던 소리
늙은 동굴 같은 안방에선
언제나 할아버지의 깊은 시름을 알리는
염주 굴리던 소리가 났었지
손수 앉힌 마당의 징검돌을 건너면
그 끝에서 빛나던 항아리들처럼
한때는 고소한 젖빛 냄새로 흐르던 방들
다시는 정정한 한 그루 나무로 서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앉은뱅이로 홀로 견뎌야 했던
목수였던 당신의 호두빛 깊은 주름
달그락, 달그락
둥근 방문 고리를 흔드는 바람소리와
집 모퉁이에 서서 늙어 버린 지팡이처럼
언제나 마른 삭정이 냄새가 나던 그 기억의 방
툭, 딱딱하게 굳은 손아귀에서 마지막 떨어져 구르다
목침 위에 나란히 놓였던
유난히 반질거리던 그 두 알의 호두
결코 소멸되지 않을 단단한 기억 하나가
지금 흔들리며 걷는 내 호주머니 속에서
자꾸만 환한 밖을 기웃거리고 있다


<심사평>내면심리 형상화 솜씨 뛰어나

단 한편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작품이 구조적으로 뛰어난 예술성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참신성과 독창성, 그리고 시어 선택의 적절성 등을 중시해서 심사하기로 하였다.

예심에서 넘어온 작품을 놓고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심사위원 간의 의견을 집약한 결과, 〈호두, 그 기억의 방〉 〈오래 된 꽃상여〉 〈민들레〉 〈심전도〉 〈아버지의 봄〉 등 5편이 최종심에 올랐다. 그 중에서 〈아버지의 봄〉과 〈심전도〉는 농촌의 어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현실 문제를 호소력 있게 다룬 점이 돋보였으나, 주제가 단조롭고 지나치게 서술적인 점이 눈에 거슬렸다. 〈민들레〉와 〈오래 된 꽃상여〉는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비범하고 서정성이 짙었으나, 시의 구조가 평면적이어서 현대시가 갖추어야 할 시대적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호두, 그 기억의 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호두, 그 기억의 방〉은 호두 자체의 내밀한 구조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입체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과거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는 복잡한 내면 심리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솜씨가 뛰어나,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신규호, 문효치, 손해일



(경남일보)

운학정/문길



나무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집 잃어버렸을까
집지킴이 구렁이 배나무 속에서
살았던 집
기침소리 으흠, 아버지 넘어가던 살림
바로세우다가
막걸리 반 되씩 새벽 약단지가 되어갔던
아버지 왜 민화로 내려앉지 못했을까
그곳엔 참기름 소금장이 있고
커다란 술독 무허가 주막이 있었지
낭창낭창 아버지 시조가 넘어가
낮 다람쥐 주둥이를 쳐다봤지
삐라가 하늘에서 내리면
와르르 염소 똥처럼 동네에서 아이들
굴러 나와
까르르한 보리밥 밀어 넣던 그 시절
물레방아 어휴 삐거덕삐거덕 돌았지
장날이면 곤드레만드레 장씨 한밤중
귀신씨름 매일 졌지
옛날 오래도록 묵어 짚단처럼 썩고
불 쇼 하던 도깨비 야담으로 가버리고
비녀바위 벼락 맞고 산은 사나운 비가
물어뜯어버렸다
산 피 흘리는 민둥산 밑으로
무녀 촛불은 오래전 꺼지고
천년에 누워버린 아스발트 위
쪼르르- 학 대신 자동차가 간다
노을 풀풀 던지며 힘없이 지리산 내려와
먹을래! 싸갈래! 낯선 식당 간판 밑
흘러가 오지 않는 뱀장어 찾고 있다

지리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운학정*에는 학이 없다 민화가 없다



*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동네이름


심사평 創作 연륜의 깊이 느껴져


최종 선에 남은 작품은 정유흔의 “종이가 지나간 자리, 황인선의 ”비단길, 김경식의
“봉선화, 문길의 ”운학정, 등 이었다. 남은 4편은 모두 당선작으로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개성이 있는 작품이었다.
정유혼의 “종이가 지나간 자리, 는 ”종이, 가 갖는 이미지를 상상력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는데 구조에 탄력이 있다. “종이가 지나간 자리, 라는 시상을 기초가 매우 온건하여 시 전체의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황인선의 “비단길, 은 걸어서 가는 길이 아름답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시상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기법이 어쩌면 의식의 흐름에도 닿아 있을 것이지만 그런 표정에서 무관한 것처럼 읽히게 하는 것이 하나의 능력일 터이다.

김경식의“봉선아, 는 꽃에 대한 속성을 이미지로 끌어내는 작품인데 일상과 내면을 관통해 흐르는 정서를 잘 포착해 내고 있다.

문길의 “운학정, 은 산골마을이 개발붐으로 변모하고 있는 상황을 차별나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와 민족적 측면, 전설과 시속 변화의 과정 등이 한편의 시속에 상당량으로 포괄되고 있다. 말의 운영이나 진행 또한 아주 활달하다. 그 만큼 시 창작 연륜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산골체험에서 어떤 체득된 줄거리를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시의 전개가 도도하고 어떤 대목에 이르러서는 거칠기까지 한 것이다.
네 사람의 작품이 각기 개성이 있음을 보았는데 특별히 “운학정, 을 뽑고 당선자의 장래를 지켜보기로 한다. 대성하기를 바란다.


-강희근. 정일근-



(불교신문)

겨울 내소사/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없는 때
눈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꺽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들어 눈뭉치를 털어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앉은 장광 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아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 시.시조/평론 심사평 “서정시의 ‘결’ 불교적 사유로 잘 표현”

249명, 모두 1500여 편에 가까운 시편들을 읽고나니, 먼저 우리 시단의 양적 풍요로움이 전해져왔다. 이렇게 많은 응모자들로 신춘문예가 성황을 이룬다면 아직도 우리 문학은 큰 희망이 있다고 느껴졌다. 신문의 특성 탓인지 불교 관련 소재가 눈에 많이 띄었으며, 대체로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불교적 가르침이란 중요한 뜻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시 작품으로 승화 내지 변용시키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대한 관심사이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지닌 신인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신춘문예의 역할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열대야’ , ‘사월초파일’, ‘소리 항아리’, ‘불꽃무늬 항아리’, ‘연못’, ‘백담사 살살이꽃’, ‘추이불이선란도’, ‘겨울 내소사’ 등 여덟 명의 작품들이 그 나름의 수준을 보여 주어 마지막 검토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더 축소시켜 최종적으로 ‘추사불이선란도’와 ‘겨울 내소사’ 두 편을 놓고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정할지 고심하였다. 이 두 작품은 각각 그 장단점이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추사불이선란도’는 선미가 승하고 시적 통찰이 빛나고 있었으나, 시적 구성과 언어적 세련미는 ‘겨울 내소사’에 조금 뒤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 있다.

‘겨울 내소사’는 일반적인 서정시의 결을 잘 살리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에서 포착되는 섬세한 화자의 눈길은 시행의 분절로 드러내면서 고요 속에서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을 통해 장엄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읽어내는 동시에 신생의 열망을 표현하는 능력은 그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시작 수련을 거쳤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추사불이선란도’는 마지막 결구에서 “내게 있어 추사의 붓끝은 너무 아득하고 깊어 보였다”라고 하는 설명적 진술로 마무리되어 결과적으로 시적 긴장을 약화시킨 것이 결정적 아쉬움이었다.

전반적으로 금년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시조 부문은 응모자의 수와 질적인 면에서 이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마련한 것 같다. 그 자체가 하나의 경사이자 축복이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아낌없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최종 당선자에게는 진심에서 우러난 축하의 박수를 전해드린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


 

(대전일보)

골목길/최재영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허공 한구석 팽팽해지고
골목에 나앉은 늙은 여자들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
봄의 한 복판에서 출렁이는
저 환한 푸념들
가지마다 탱탱하게 들어차는 수런거림
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듯
지상과 허공 그 짧은 간극으로
물오른 생의 주름들이 펼쳐지고
음탕한 농담 한 두 마디 건넬 때마다
자지러지게 흩어지는 쭈글쭈글한 웃음소리
잠시 생을 붉게 물들이는
봄날 눈(眼)빛 환한 기억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담장에 기대앉은 봄꽃들
한동안 그들이 피워올린 검버섯을 따라 올라가고
여기 짧은 환희, 봄은 덫이었나.



심사평 “시적 미학 절묘한 표현 돋보여”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은 16명이 출품한 80여편이었다. 이 중에서 본심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명의 다섯 작품.
‘그해 겨울…’(허남훈)은 아프가니스탄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그린 시였다. 변압기 공장에서 손가락마저 잘리고 임금마저 받지 못한 채 고향인 카불로도 갈 수 없는 처지인 형을 한국인 화자의 시선으로 그렸다. 이 시는 과거의 리얼리즘 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 속에 감상주의의 낙인이 깊게 남아있다.
‘맛있는 두부’(최성춘)는 이채롭고 속도감 넘치는 시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말랑말랑한 두부는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두개골이 갈라져 피가 나듯이/ 녹슨 냄새와 국물은 흘러나왔다”처럼 식탁에 차려진 두부와 오토바이 사고의 기억을 합성시켜 특이한 시적 활력을 생성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활력을 살리지 못한 채 상투형으로 마무리된 것이 흠이다. 시는 소설처럼 연속된 서사가 아니라 비연속의 연속적 서사다. 텍스트에 너무 친절한 서사를 부여한 점이 이 시의 최대 약점이었다.
‘떠들썩한 식사’와 ‘검객 사오정’(김영식)은 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떠들썩한 식사’는 “오후 두시의 강변 뷔페 안” 창가 식탁의 어느 청각장애부부의 “부지런한 필담”을 마치 그 부부의 일원이 된 듯 세밀하게 전하고 있다. 또 ‘검객 사오정’은 “황사 휘날리는 도시 비탈을 순례”해야 하는 자본주의 세일즈맨의 ‘검법(판매술)’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두 작품의 결점을 굳이 찾자면 작품들이 너무 고요하게 완성됐다는 점이다.
“연두빛 내력들이 제 몫의 봄을 키우느라/ 햇살을 끌어모으는 중이다”로 시작되는 ‘골목길’(최재영)은 응모작들 중 단연 돋보이는 따뜻한 작품이다. 총 20행의 시행들이 저마다의 밀도로 촘촘히 살아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볼우물 가득 생의 이력을 오물거리는지/ 골목은 하루종일 분주하다”와 같은 표현은 그야말로 순간포착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또 시적 미학을 충분히 쏟아놓은 마무리 역시 뛰어나 심사위원들은 일치된 마음으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명인, 이시영>



(한라일보)

구포역/김재근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는 거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거
 마른 겨울빛 받으며 벌 서고 있는 나무같이 견디는 거, 아닌가

 구포역, 휘파람 불며 기차는 몰려오고
 사람들은 낙엽처럼 또 부서져 내린다
 찬바람 부는 광장구석 어깨 구겨져 서성이면
 비릿한 무엇이 목 어디 가시처럼 걸리고
 야산 겨울숲 너머로 하루해가 풀썩 지고 있다

 늦은 역광장은 묘지처럼 이제 적막하다
 빈 소주병은 시린 기억들을 꽉, 채우고 뒹굴고 있다
 꺼져가는 모닥불 옆 용도폐기된 라면박스와 신문지에 쌓여
 사내는 잠이 들고

 작은 불빛들이 다가와 사내의 이마를 만진다
 깜박이는 노숙의 굽은 등대, 상처여
 이 후미진 외곽이 그대의 둥지였구나
 물새의 알, 깨어진 알이여

 바람과 겨울바다를 건너 그대가 흘린 모래알
 나의 무릎에서 어지러이 날아오른다
 첫 차가 오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그대와 나의 겨울을 태우고
 목쉰 기적 소리 오래 울리며 떠나고 있다



시 심사평 눈물 도는 주지적 서정 풍요로워

너무 많은 응모 편수에 '놀랐다'고 하면 화두가 될까? 시가 무슨 소용이 되느냐고 따따부따 말들 하다가 이제는 아무런 말조차 없어져 가는 이 불모의 시대에 응모작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한라일보의 신춘문예가 18번째를 맞으면서 전국적인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주는 한편 아직 우리 시가 일궈야 할 황무지가 많음을 은밀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상말로 '아직 우리 시는 죽지 않았어!'하고 뻐길 수조차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인간의 혼이 언어라면 언어의 혼은 시이기 때문이다.

 6백 편도 넘는 시들 가운데 10여 예비시인(?)들이 쓴 50여 편의 시가 골고루 뛰어났다. 선자는 선자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 시를 읽는 행복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동시에서부터 육순의 노인네가 쓴 전국 곳곳에서 응모해 온 시편들. 물론 아직 너무 설익은 시들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응모자들의 시들이 읽을 만 했다.

 우선 10편을 뽑았다. 김서윤의 <2월>, 한여운의 <장마>, 유행두의 <헛제삿밥>, 강미화의 <대장장이>, 김은실의 <두엄>, 고경숙의 <자하문 밖 열쇠수리공>, 문정희의 <수목원 은행나무>, 이혜경의 <졸음운전>, 위명희의 <거울 앞에서>, 김재근의 <구포역>- 이 시들이 보여주는 시의 세계는 각각 다르지만 '눈물 도는 주지적 서정의 풍요'로 선자에겐 읽혔다. 모두 당선작으로 뽑았으면 좋을 만 하다.

 최종심에 오른 김서윤의 <2월>과, 김재근의 <구포역>을 두고 몹시 고심했음을 밝혀야겠다. 김서윤의 시들은 기성시인 못지않게 이미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다. 마침내 김재근의 <구포역>을 뽑는다. 이 작품 말고 <달팽이집>을 뽑을까도 했지만 <구포역>풍경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 어른거려 그 감동을 지울 수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의식도 높이 샀다. 이 시에 대해 무슨 군더더기 말을 더 보태겠는가. 더욱 정진하시라! <문충성/시인>


(광주일보)

몸의 저울눈/정재영




푸줏간 주인이 고기 한 칼 썩썩 썰어
척, 저울에 올리자 바늘이 바르르 떤다
그의 손대중이 저울눈 하나를 겨냥해
잠시 그 경계를 넘나들다가 딱 그 눈금에서 멎는다
얼마나 칼질을 해댔으면……
칼 쥔 손에 저울눈 하나가 직감처럼 꽂힐 때까지
마음의 저울추가 수도 없이 진자운동을 거듭했으리라
모자라서 보태고, 넘쳐서 덜어내는
모자람과 넘침이 오락가락 셀 수도 없었으리라
내 몸에 던져지는 생의 부하를 짚어내면서
내 안에서도 저 저울처럼 바늘 하나가 수도 없이 흔들렸다
모자람과 넘침 사이에서 흔들림이 계속되고 있다
살코기 한 덩이에 요동치는 저울처럼 내 몸도
등짐이라도 끙, 지고 일어설 때면 바르르 떨던 것이다
나는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저 푸줏간의 저울처럼 참 많이도 흔들리며 살아온다
저울은 이제 평정을 되찾았다
생의 무게를 내려놓고서야
꺾인 허리 반듯이 펴지던 어머니처럼.



시 심사평 일상에 독특한 시선탄탄한 구성력 돋보여


모두 열네 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라왔다. 평균 다섯 편 안팎을 응모했으니 예순 편쯤 되는 작품을 읽은 셈이다.
이 가운데 정재영(‘몸의 저울눈’ 외), 이병철(‘수평선’ 외), 변호이(‘길’ 외) 세 명을 최종심에 올리는 데는 어렵지 않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도 본심에 올랐던 만큼 일정한 수준을 갖추었고 소양도 충분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은 단점들이 눈에 띄었다.
첫째,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으나 무엇을 써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쓸 거리가 보이지 않는 시, 즉 왜 썼는지를 모르겠는 시) 둘째, 위와는 반대로 소재나 주제는 괜찮은데 시적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셋째, 기성시인의 작품이라면 문예지 등에 발표해도 무난하겠지만, 신예의 등단 작품으로는 아쉽다. (패기나 참신함이 없다. 혹은 밋밋한 소품이다.)
변호이의 시 ‘길’은 여러 미덕을 갖췄다. 독창적이고 내성적이고 시를 밀고 나가는 사고의 힘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덴마크 장기(臟器) 어디쯤/숨어계셨습니다 감쪽같이/스물 세 해를 속았습니다” 같은 구절이 보풀처럼 걸렸다.
정재영과 이병철을 놓고 으뜸과 버금을 가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제가끔 탄탄한 세계를 보여줬다.
이병철의 ‘수평선’은 감각적 표현이 돋보이는 섬세하고 깔끔한 시다. 요즘 우리 시단에 이런 시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데 심사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 작품을 떨구는 데는 적잖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근간 다른 매체를 통해서라도 그의 시들을 만나게 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정재영이 데뷔하는 무대에 에스코터가 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한다. 당선작 ‘몸의 저울눈’은 작은 일상적 사건에서 삶의 무게와 균형과 흔들림을 짚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응모한 시 전부 힘 있는 게 아주 긍정적이다. 거듭 축하하며 문운과 건필을 빈다.


(동양일보)

오월/김영식


아이가
굴렁쇠를 굴린다
빈 골목이 출렁거린다
투명한 바퀴가 오후의 적막을 감는다
파닥거리며 햇살과 바람이
허공이 한 아름씩 감겨든다
감긴 것들이 말려들어가
둥근 시간이 된다 제 몸 속
길을 떠밀며 달려가는 아이

플라타너스 강둑 위
굴렁쇠가 아이를 굴린다
나무그늘 아래서 아이는
새소리처럼 지저귄다
자궁처럼 환한,
굴렁쇠 안 깊숙이 둥근 산이 눕는다
둥근 물소리도 따라 눕는다

들녘 끝
은빛실타래가 천천히
감긴 길을 풀어낸다
고요하던 풍경이 수런거린다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길섶
햇살과 바람이 풀린다
노을 몇 점 걸어 나와
강가에 걸터앉는다

텅 빈,
허공을 밀고 가는 아이
우주 한켠, 챠르르
지구가 굴러간다 오월이
푸르게 자전한다


심사평

신문사로부터 내게 넘어온 원고분량은 266편이었다. 많은 분량이다. 이상한 일은 시가 사회의 반향이나 눈에 띄지 않는 수요에도 이렇게 많은 시의 지망생이 있다는 일이다. 그 이유야 어디에 있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든 아니든 시인의 위의(威儀)와 자존심과 겸손함을 견지해야 되리라고 생각된다. 각설하고 본심에 올라온 266편의 시편 가운데 내 손에 최종으로 남은 시편은 김영식의 ‘오월’외 4편과 김민영의 ‘내 오두막의 낡은 문’외 8편, 김은실의 ‘입동’외 5편이다.
김영식의 시편들은 밝고 경쾌하며 속도감과 감각적인 언어교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서도 ‘오월’은 작품의 소도구들인 소년, 굴렁쇠, 5월의 하늘과 푸르름, 강둑과 플라타너스들이 모두 ‘오월’이란 시를 위해 동질적으로 기여하고 헌신하고 있는 점이 그의 다른 작품 ‘단단한 틈’처럼 서로 견고하게 엉켜 있다.
김민영의 ‘내 오두막의 낡은 문’외 8편은 전 편이 모두 산문성 시의 특장들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행의 길이가 길고 유연함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 편하게 하고 있는 점이다. 행과 행간이 서로 주어와 서술 형식으로 이뤄진 점도 그렇다. ‘문을 열면 온전한 것은 오직 문뿐이고/ 그냥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오두막,/ 아주 낡은 문과 같은 내 마음이 사랑이었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오두막처럼 금세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 시중에 일부 인용한 것임. 그는 장시를 쓰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김은실의 ‘입동’외 5편은 입동 무렵의 스산한 농촌풍경을 아주 리얼하게 승화시켜준 작품이다.
‘메주를 쑤는 일은 마실길을 끓이는 일이다/ 이곳저곳 쥐구멍 숭숭난 마을안 소문을 메우는 일이며/ 겨우내 헐거운 낮잠에 빠져 있을 농기구들의 텅빈 시장기를 달래어주는 일이다’에 이르러서는 절창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기성 시인의 입동시편들에서도 이렇게 가슴에 닿는 표현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앞뒤의 표현이 이 중심표현을 떠 받치지 못한 듯한 점이 아쉽다. 위 세편 모두 훌륭한 특장들을 지니고 있으나 현대적 감각에 좀더 어필한다고 생각되는 김영식의 ‘오월’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다른 두 사람에게도 분발할 것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양채영(시인)

 

 

(무등일보)

팥죽을 끓이며/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 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선
믹서에 마저 갈아 체에 거른다
헤쳐진 살 고루고루 퍼지게
잘 저어야 하는데 반죽 다듬는 사이
파르르 넘친다 아, 이 불같은 성질
저어주지 않으면 밑이 타지고
위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야 마는
천천히 있어야만
지 성질 온전히 풀어지는
압축된 열

그래서 팥죽은 붉다

 

심사평 "기본적인 시적 역량 독창성 돋보여"

올해 응모작이 1천편에 달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몽유도원도' 외 4편, '젊은 도서관' 외 3편, '팥죽을 끓이며' 외 2편, '불이 짓는 집' 외 3편, '아우슈비츠' 외 3편, '썩는다는 것에 대하여' 외 3편 등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결같이 신인의 시는 참신해야 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튼튼한 시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운 상상력과 언어 사용, 시적인 표현과 리듬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아울러 시적인 기량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기성 작품과는 다른 자기만의 체험을 통한 독창적인 내용과 시형식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표지를 뜯어내고, 혹 작품마다 이름이 있는 경우 그 이름까지 도려낸 신문사 측의 배려로 누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 채 앞에서 밝힌 심사 기준에 의해 심사를 하면서 소재와 표현기법이 표절을 의심할 정도로 기성 작품의 냄새가 짙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일단 발표되었다고 판단된 작품은 일단 제외시켰다.

또 최종 확인 과정에서 기성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응모자의 작품도 제외시켰다.

올해도 신춘문예의 경향에 맞추기 위한 장시와 산문화, 기존 신춘문예 당선작의 아류는 물론 참신한 발상에 비해 언어의 밀도가 떨어지거나 추상성으로 인해 주제의식이 선명하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진부한 소재와 개인별 응모작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을 하면서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우슈비츠'와 '팥죽을 끓이며'를 다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응모작의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단단하고 화자의 의식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과 신선함이 인정된 '팥죽을 끓이며'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한편 기성 작품의 흉내나 냄새의 혐의가 전혀 없는 신선한 이미지로 조류독감에 의해 살처분돼야 하는 닭의 현실을 아우슈비츠로 상징화 한 작품 '아우슈비츠'에 대하여도 장시간 논의가 있었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본심 허형만(시인, 목포대 교수)


 

(경남신문)

문 밖에는 봄/유행두



지구 끝에서 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 파닥거리는 지느러미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지구를 한참이나 돌다 온 듯한. 퇴계 선생 지폐 위에
가볍게 흩어진다. 산달 아내. 배가 부푼다.

중환자실. 어머니는 링거병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한 알씩 세고 계
신다. 끼니 때마다 가는 호스 타고 내려가는 미음. 포르말린 먼지 반
짝. 휠체어 힐끔 훔쳐보신다.

-저녁마다 어둠이 먼저 눕던 달셋방. 도란도란 웃음을 젓가락질하던
밥상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번갈아 등을 토닥거리고

몇 개월 전 신문처럼 할 일 잃고 누운 내 옆에서 아내는 낮은 기도
소리를 쥐어준다. 가끔씩 지구는 벌떡벌떡 몸을 세워 링거병을 흔들고
아내를 병실 바닥까지 내려 앉히지만 아내는 언제나 가지런히 웃는
다.

모둠발을 해 본다. 날개가 돋은 휠체어. 휠체어가 대기권을 향해 바
퀴를 힘차게 굴린다. 지구가 뒤로 밀리고 있다.



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지동설’ ‘서풍 불던 날’ ‘라디오 여왕’ ‘접시 시계를 타고 있는 소설가 P씨’ ‘석포역에서’ 그리고 ‘문 밖에는 봄’이었다.
그중 ‘지동설’은 도시를 사막으로 보는 구상이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었고. ‘석포역에서’는 안정된 화술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있는 뜻이 약하다는 점이 드러나 있고. ‘라디오 여왕’은 포즈를 취하는 화자의 입장이 깊이를 드러내지 못했고. ‘서풍 불던 날’은 서술적인 리듬에서 얻어질 수 있는 어떤 원형적인 이미지가 살아나지 못 했다.
그렇게 제외하고 ‘문 밖에는 봄’이 남게 되었다.
이 시는 이미지가 투명하고 할 말이 뚜렸하고 구조가 대단하다.
아내가 빵을 굽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나’는 실직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화목한 가정으로 거듭나 있다.
테마는 아주 상식적이지만 이야기와 이미지를 끌고가는 솜씨가 섬세하면서 탄력이 있다. 끝 연에서 ‘날개가 돋은 휠체어’에 화자의 의도가 집약되어 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문 밖에는 봄’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는 이 밖에도 그의 능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을 바란다. (심사위원 이광석. 강희근)



(전남일보)

냉장고, 요실금을 앓다/안오일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냉장고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 하는가
그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있다.
뜨겁게 열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열 식구의 투정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곤 하던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놓쳐버렸을까
먼 바다 익명으로 떠돌던
등 푸른 고등어의 때
연하디 연한 그녀 분홍빛 수밀도의 때
세월도 모르게 찔끔찔끔 새고 있다.
입구가 출구임을 알아버린
그녀의 깊은 적요가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낸다, 아직 부끄러운 듯
제 안을 밝혀주는 전등 자꾸 꺼버리는
쉰내 나는 그녀, 의 아랫도리에
화려한 반란이 시작되었다.


<심사평>
시 지망생들은 왜 고향의 가난한 부모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을까. 그것도 왜 유년과 연관된 이야기에만 집중할까. 그렇게도 쓸 것이 없어서야 무얼 더 일러 말하겠는가. 아니 최소한 자본의 세계화 속에 신음하고 있는, 이 슬프고 노여운 세계를 사는 자기 삶, 자기 실존, 자기 존재조차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이번 심사를 하면서 일국(一國)의 시인을 꿈꾸는 시 지망생들의 소재와 주제의식과 사유의 협소함에 대해 심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랫도리에 물 흘리는 냉장고의 내력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냉장고를 운영하는 우리네 보통 여성들의 고단한 삶과 시간에 의한 생의 마모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안오일, 그리고 새벽 별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상징하는 바가 아무 것도 없어서야'라며 지금까지 별에 대한 상상력을 완전히 전복해버리는 이형경 등이 200여명의 응모자 중의 그럴 듯한 수확이었다.

그런데 이형경은 활달한 상상력과 전복을 통해 생의 이면을 들추려는 젊은 패기는 좋지만 시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허점이 많았다.

그래서 나머지 응모작에서도 고른 수준과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 안오일을 당선작으로 민다.

안오일은 시에서 많은 수련이 엿보이지만 상상력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형경에게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드리며, 축하를 보낸다.

<시인ㆍ문학들 주간>


 

(경인일보)

소금쟁이를 맛보다/한창석



하늘과 수면 사이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사내는
愁心이 깊어 차라리 소금이 되면
감옥의 水深을 가늠해 볼 수 있을까 마음을 절였다
蓮塘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싶지만
후들거리던 다리 그 어디에
그처럼 완강한 삶의 근육이 붙어 있었는지
그래도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도무지 가라앉을 수가 없다
차라리 발을 굴러 하늘로 날아오르려 해도
날개가 없어 새의 그림자를 따라 못의 언저리까지 질주해 볼 뿐
潛泳도 昇天도 하지 못한 채 세상 바람이 죄다 그의 몫이다
젖을 수 없는 못은 도리어 沙漠
내려다봐야 보이는 하늘은 도리어 苦海
잔비를 맞으며 세상을 미끄러진 하루
잔비에도 등허리가 시큰했을 사내 생각에 코허리가 시큰하다
圓과 圓이 부딪쳐 깨어지는 수면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흐느끼는 세상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렸을 사내
盡人事의 땀이 마르고 응답하지 않는 神을 향한
巫女의 눈물마저 다 마르고 境界에 갇힌 자
마른 영혼을 찔러 혀에 가만히 대 보니
몸서리쳐지도록 짜다
타들어간 鹽田의 까만 소금
刑期를 가늠할 길 없는 사내 어느 새
철없이 겁없이 세상을 지치는 어린 새끼들을 수습하여
水草 사이로 부끄럽게 여윈 몸을 감춘다



심사평 / 김정환·도종환
"생활속 현상 잡아낸 감각적 눈 삶의 철학 이끌어낸 힘 돋보여"


시를 쓰는 우리도 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 서서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산다.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가 시의 화자가 느꼈던 그 경계의 아슬함과 위태로움은 시에도, 시를 쓰는 삶에도 역시 매일 찾아온다. "잠영도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가라앉을 수도 날아오를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경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고해(苦海)를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건너가는 일, 그게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밀도 높게 형상화 하고 있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시적 긴장이 살아 있고 시의 내면이 꽉 차 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합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언어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끌려가기보다는 '호랑이가 없다'와 같은 시에서처럼 삶에서 우러난 시가 좋은 시라는 믿음을 견지하면 좋겠다.

'바닷가에 서서','곰국'과 같은 시들도 충분히 당선작이 될 만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영'도 삶과 언어가 육화되어 있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작품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포클레인','바다는','종착역에 대한 세 개의 레토릭'등도 모두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시를 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전북도민일보)

기다림은 우주입니다/김창래


내 기다림은 피가 생깁니다.
신장병 완치 약이었습니다.
남들은 피가 마른다던데 나는
기다릴 일이면 건강한 독수리가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은 내 가치가 높아집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다리는
강물의 흥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밤잠도 없는 강물들의 흥분 소리
물이 된 것을 행복해하는 아우성의 힘
샘물이 개울물로 강물로나이아가라 폭포로
집결하는 기다림의 영원 碑가 되는 바다로
기다림 한 낮이면 피가 졸아든다는데
내 성욕은 바다로
맑은 햇빛 산으로 승화 됩니다.
기다리는 내 모습 안에 고이는 내 눈물은
기다림으로 모여 생생한 고백으로 되는 피
남들은 기다림이 늦거나 만나지 못하면
병에 실망에 노이로제에 걸려 자살도 한다지만
나는 생명이 깊어지는 바다 日記를 씁니다.
만나고 기다림은 한 침대입니다.
포도가 쨈 되기 기다리는 동안 생명은 불
이 불은 기다림의 사랑입니다.
새로운 기다림은 항시 설레는 출발신호입니다.
여름 기다림이 없는 봄 꽃은 죽음입니다.
가을 과육은 여름이 남긴 기다림이지요.
과목이 잉태한 생명 맛
겨울을 이긴 씨앗은 봄이 기다려 준 절정이지요.
이 씨앗을 위해 오는 봄을 사랑이라 하지요.
기다림 그림이 전시된 굴에
빛은 태양보다 밝아
태양보다 먼 곳을 기다린다 해도 보이기에
내게는 오늘 의미가 기다린 날이라 더 밝습니다.
이는 기다림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종이로 바다를 먹물로 기록되는 기다림은
지금도 창조되는 우주를 만납니다.


 

(전북일보)

늙어가는 판화/이현수


조각도 앞에 손을 둔다
순간, 조각도가 날렵하게 손에 스쳤다
아직도 내 손에 깎아내야 할 부분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어머니 얼굴은 남겨 둬야할 곳보다
파내야할 곳이 더 많았다
얼굴 윤곽보다 뚜렷한 곡선을 여러 번 파내다보면
결국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얼굴
그래서 더 어머니로 보였던 얼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조각도를 따라 비워지는 굴곡
그 허공에도 몇 겹의 층이 있어
잉크로 찍어내면 더욱 환해졌다
어두워질수록 빛나는 주름의 공허

몇 번씩 그 결을 만지며
여백을 남기는 어머니
완성된 얼굴 판화가 내 어머니이기만 할까
하나면 충분할 것을 여러 장 찍어내며
확인하는 것이다



심사평 "육친 정으로 밥지어 세월·삶 양념으로 비벼낸 내공"

시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즐거움이다. 소통의 그물, 이른바 네트워크에 속한 기쁨은 이에 연루된 사람의 수가 적다고 작아지지 않는다. 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두루 엮인 그물을 긴장하게 하는 높은 안테나는 세속과 타협 않는 비판정신 또는 일종의 반골정신 같은 것으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다. 이 도저하게 올곧은 사람됨의 바탕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을 여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저, 학교를 졸업한 후 시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은 차마 무서워서 다시 시를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심사를 맡은 우리는, 심사를 통해 새로운 소통을 체험하게 되었음을 영광스럽게 고백한다. 이 소통이 더러 잔치의 성격을 띠기도 함을 우리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20여 예비시인이 쓴 70여 편의 시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정재영, 문정희, 임상훈, 김정경, 최민영, 신은영, 이현수의 작품들을 남겨 거듭 읽어보았다. 정재영의 ‘손이 쥔 손’, 문정희의 ‘붉은 다라이 공장에서’, 임상훈의 ‘덕지덕지’ 등은 당선작으로 올려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라는 데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다. 다만 ‘신춘문예답다’고 말할 유형적 한계를 나누어 가지고 있었고 동봉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의구심을 다 지워 주지 못했다. 김정경의 ‘몸의 곶간’, 최민영의 ‘애벌레의 꿈’, 신은영의 ‘춤추는 애벌레’, 이현수의 ‘늙어가는 판화’ 등은, 시의 전통적 미덕이 젊은 상상력으로 되살아나는 진경을 엿보게 했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사람이 아니라 작품에 주는 격려라는 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편치 않았다.

신은영과 이현수의 작품을 두고 고심하던 우리는 후자를 남기기로 결정했다. 신은영은 보낸 작품들의 전반적 수준에서는 더 나았으나, 집중된 한 편을 보여주는 데는 이현수에게 뒤졌다. 당선작은 상황의 개연성은 약했으나, 육친의 정으로 밥을 지어 세월과 삶의 양념으로 비벼낸 간단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한다. 또 낙선자들에게도 격려의 갈채를 보낸다. 낙선이야말로 뜻있는 글꾼에게는 한때의 양식이 아니었던가. 시적 소통을 놓지 않는 우리 모두에게 시적 축복이 폭설처럼 내리기를!

안도현(시인, 우석대 교수)
이희중(시인, 문학평론가, 전주대 교수)


 

(영남일보)

떡갈나무 약국/임수련


밤새 앓고 난 후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잌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죠
솜털 가운을 걸친 새들
자잘한 열매 알약들과 이슬 드링크 들고
분주하고요 떡갈잎 의자에 앉아 깔깔대는 노란 햇살들
눈꼽 씻은 바람이 흔드는 나뭇가지 소파
꼬마전구 도토리알 켜져있는 조제실 구석에선
약봉지 바스락대는 사슴벌레랑
무당벌레의 그루잠도 훔쳐볼 수 있어요

당신도 어디 아프신가요?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거리며 향과 색과 소리들이 화답하는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 보시죠
어린 살결처럼 싱싱한
푸른그늘 대기실에앉아 깨알같이 쓰여진
마음의 처방전 읽고 있으면
어떤 상처도 아물게 한다는 까만 눈속에 당신을 태운 다람쥐 한
마리
지구보다 더 너른 나무의 세계로 안내해 드리고요

떡갈나무약국의 주인장 오색딱따구리와
구름트럭 끌고 약배달 온 빗방울의 경쾌한 대화도 들을 수 있죠
가끔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밤의 이마에 새겨진
따갑고 노란 눈동자들 등을 파고 들고
약국 처마의 기둥들이 굵어지는 걸 볼 수도 있는 곳
참 그곳엔 그 기둥들도 혼신으로 즙을 짜낸다는군요
마음이 푸석하게 부어올 땐
딱따구리구리 마요네즈
케?은 맛있어 인도사이다 인도사이다,
콧노랠 흥얼대며 떡갈나무약국을 찾아가봐요



[심사평] "이야기시·노래시 조화 돋보여"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품의 다양성이 부족하고 불필요한 요설의 노출이 거슬리는 점이었다. 이는 아마도 신인들의 의욕 과잉이나 신춘문예의 흐름을 그릇 인식하고 있음에서 온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실험시, 현실고발시, 민중시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내면 의식과 삶에의 통찰을 노래한 시들이 많았다. 시의 풍토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징조로 읽어도 될듯하다. 그런 가운데서 심사위원을 숙고하게 한 작품은 '칸나가 피는 가계부' '떡갈나무 약국' '먼지의 안쪽' '유방암을 앓는 여자' '치자나무의 마음'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두 심사위원은 비교적 오랜 대화를 나누어 마침내 '떡갈나무 약국'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합의했다.

'칸나가 피는 가계부'는 언어구사가 탐스럽고 현란하나 가끔은 우발적인 시행이 불필요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지만 당선권으로밀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먼지의 안쪽'은 생각의 깊이와 휴머니티라고 할 인간미를 지니고 있으나 관념시로 흐를 가능성이 결함으로 지적되었고 '유방암을 앓는 여자'는 요즘 유행하는 '몸담론'을 체현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으나 소품(小品)이고 결말 처리에 모호함이 있었다.

'치자나무의 마음'은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일종의 물활론적 사유가 담겨 있으나 지나치게 소박하고 평이함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인 '떡갈나무 약국'은 시어의 경쾌한 흐름과 발랄한 상상력이 시를 읽는 마음을 견인하는 힘이 있다. 이야기시와 노래시의 양면을 함께 지니며 비약적인 어휘와 에그조틱한 상상의 모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마도 가볍지 않은 감각적 훈련을 쌓은 듯하다.

당선자와 그 밖의 모든 응모자에게 문운 있기를 바란다.

◇심시위원=이기철(시인·영남대 교수),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강원일보)

소라여인숙/김영식


어린물떼새 발자국 안테나처럼 찍힌
해변가 모퉁이 외딴 집 한 채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
「자는 방 잇섬」 걸어놓고 주인은
종일 갯바위 너머 일 갔는지
마당엔 젖은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집이 그리운 집게처럼 나는
풍랑주의보 내린 어로漁撈를 정박시키고
소금기 반짝이는 그 집 빈방에 들어
하룻밤 묵고 가기로 한다
바람소리 켜켜이 비닐장판처럼 깔린
방바닥에 지긋이 손을 넣으면
오래 흘러온 것들이 제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
공중을 내려놓은 갈매기들이
깃 속에 낮의 시린 부리를 묻는다
등 굽은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세상에 없는 주소 꾹꾹 눌러 적으면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방파제 끝에서 인부 몇 돌아오고 나는
옆으로 누워 밤을 견디는 긴발가락집게처럼
온 몸이 녹아드는 아랫목에 누워
홑이불 같은 수평선 한 자락 당겨 덮는다


[심사평]시부문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 외 4편과 박창호의 `오십견'외 4편이었다.
박창호의 시는 일정한 작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체가 담백하고 과장된 진술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씌어진 듯한 그의 시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다. 상실감과 회한과 생의 덧없음, 차분한 어조는 시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면서 독자를 숙연하게 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이런 미덕에도 불구하고 감상성은 그의 시의 큰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여문 마늘을 먹으면/ 아버지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같은 진술이 그렇다. 감상을 절제할 수 있는 냉정한 가슴, 객관의 자리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선작으로 뽑은 김영식의 `소라 여인숙'은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물들과 자신의 심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돋보인다. “대문 푸른 그 집의 적막을 떠밀자 능소화/ 꽃잎마다 출렁! 노을이 밀려든다”와 “모서리 둥글게 닳은 물결무늬 숙박계” 같은 묘사도 빼어나지만 “누군가의 등을 안아주던 흰 바람벽/ 위로 참방참방 헤엄쳐오는 숭어 떼” 같은 표현은 탁월하면서도 참신한 맛과 멋이 있다. 신인에게는, 그리고 문학에는 독자를 설레게 하고 놀라게 하는 이런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소라 여인숙'은 표현에 공을 들이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무척 신경을 쓴 작품이다. 그러나 함께 응모한 다른 시들은 `소라 여인숙'과 다소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썩은 생선들과 고래냄새, 그리고 범죄와 죽음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 신인의 독특한 시시계를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김영기·최승호


 

(부산일보)

붉고 향기로운 실탄/정재영


드티봉 숲길을 타다가 느닷없이 총을 겨누고 나오는
딱총나무에게 딱 걸려 발을 뗄 수가 없다
우듬지마다 한 클립씩 장전된 다크레드의 탄환들
그 와글와글 불땀을 일으킨 잉걸 빛 열매를 따 네게 건넨다
실은 햇솜처럼 피어오르는 네 영혼을 향하여
붉게 무르익은 과육을 팡팡 쏘고 싶은 것이다
선홍빛에 조금 어둠이 밴 딱총나무 열매에 붙어
이놈들 보게,알락수염노린재 두 마리가 꽁지를 맞대고
저희들도 한창 실탄을 장전 중이다
딱총을 쏘듯 불같은 알을 낳고 싶은 것이다
그게 네 뺨에 딱총나무 붉은 과육 빛을 번지게 해서
갑자기 확 산색이 짙어지고
내 가슴에서 때 아닌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고…
막장 같은 초록에 갇히면 누구든 한 번쯤 쏘고 싶을 것이다
새처럼 여린 가슴에 붉고 향긋한 과육의 실탄을
딱총나무만이 총알을 장전하는 게 아니라고
딱따구리가 나무둥치에 화약을 넣고
여문 외로움을 딱딱 쪼아대는 해 설핏 기운 오후
멀리서 뻐꾸기 짝을 부르는 소리 딱총나무 열매 빛 목청
딱총나무의 초록이 슬어 놓은 잉걸 빛 알들이
겨누는 위험한 숲 내 손을 꼭 잡는다.


심사평 역동적인 생명력 거대 물결 이뤄

장시간 600명에 가까운 이들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다지 지루한 줄 몰랐다. 문학의 위기니,시의 죽음이니들 해도,상당수의 투고작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반듯하게 갖추고 있었고,저마다의 매력적인 향기를 뿜고 있었다. 전반적인 수준이 만족할 만했다.
고른 수준을 보이는 이,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이 등을 골라서 열다섯 명을 뽑았다. 모두 손색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래도 어쩌랴,서정적 진정성,언어적 숙련도와 개성의 깊이 등을 기준으로 다시 다섯 명을 뽑았다. 모두 수작들이었다. 그러나 한 편의 당선작을 위해 다섯 명의 흠을 잡아보기로 했다.
김경미씨의 투고작들은 참신한 언어감각이 돋보였다. 동시에 이 장점은 씨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젊은 언어감각이 언어적 경박성으로까지 치달아 버린 것이다.
김명희씨는 사물과 일체되는 물활론적 감수성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문적인 서술을 지양하고 보다 응축된 표현을 해야 하겠다는 주문이 따랐다.
김영건씨는 지나친 노련함과 산문성이 트집 잡혔다. 하지만 위트가 시적 재능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그의 유쾌한 상상력은 돋보였다.
정재영씨는 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를 투고하였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높은 수준의 역작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 당선작으로 정한 시 '붉고 향기로운 실탄'은 한마디로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여주는 시이다. 산문적인 서술로는 이를 수 없는,말소리의 조직과 오감을 통해 서정을 주입하는 시이다. 불필요한 이인칭 청자,수사적 어법의 과용 등이 흠이 된다는 지적도 있긴 하였으나 이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는 반대가 없었다.
한 편을 뽑는 일은 괴로웠다. 하지만 심사자 셋은 한동안 향기로운 시의 바다를 유영하고 나오는 달콤한 나른함을 나눌 수 있었다.


/시인 김종해 신진 안도현



(매일신문)

스트랜딩 증후군/김초영


파일럿 고래들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일렬로 누워 있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

중앙병원 307호실,
누워있는 엄마의 팔뚝에 옅은 햇빛이 스며든다.
오늘도 멍이 하나 더 늘었다.
의사는 건조한 표정으로 엄마의 굳어가는
관절들을 만져보곤 했다.
스스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겁니다.
일종의 무의식 상태의 자살이죠.
의사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녹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산소통이
조용한 병실의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고래떼는 죽고 말았다, 고 보도 되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감행했지만 전부 살려 내지는 못했단다.
파일럿 고래들은 하늘로 날려던 것이었을까.
자살하기 위해 육지까지 올라온 고래들처럼
엄마가 가는 물줄기를 내뿜는다.
밀린 병원비가 불어나듯
투명한 오줌비닐이 노랗게 부풀어 올랐다.

신문에 죽어있는 고래들의 사진이 실렸다.
죽은 고래들의 미약한 주파수가 좁은
병실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엄마도 저 주파수를 쫓아 육지로 가고 있을지 몰라.
흑백의 고래 사진을 오려 엄마의 머리맡에 붙여두었다.
고래의 순한 눈이 감기고 있다.
눈알이 오랫동안 따끔거렸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40여편의 작품을 검토한 결과 '스트랜딩 증후군' '에어워시' '비온 뒤' '타워버그' '길' '오래된 가족' '2007 봄, 누드찍는 남자' '셋방' '젤리 시계를 차고 있는 소설가 P씨!' '장독대를 생각하며' '우물이 땀을 흘리네' '원진다방' '겨울 나방들의 초상'이 남았다.
여기서 최후까지 남은 작품은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 구민숙의 '비온 뒤', 김미숙의 '타워버그'였다. 신춘문예의 특성상 참신성에 몰두한 나머지 제목부터 특이한 것을 들고 나온 것들이 많았는데 그 대부분 시의 구조와 겉도는 것들이어서 아쉬웠다. 아니면 현대적 의미의 묘사적 능력은 돋보였으나 깊은
시적 비전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김미숙의 '타워버그'가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사물을 그려내는 입심이 남다른데가 있었으나 묘사 그것에 그쳐 시적 무게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다. 구미숙의 '비온 뒤'는 차분하게 처리하는 서정적 진행이 위트와 더불어 어떤 울림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참신성이 다른 작품에 비해 덜하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다.
김초영의 '스트랜딩 증후군'과 한의준의 '에어워시'는 둘다 당선권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한의준의 또 다른 작품 '보일듯이 보일듯이'도 '에어워시'와 더불어 충분히 매력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리없이 연결시켜 나가는 '스트랜딩 증후군'이 상상력의 폭이 크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국제신문)

타임캡슐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정태화


놋쇠숟가락 하나가 여닫이문 깊숙이 빠져 있었어 문고리 구멍에 꽂혀 타다닥 불
꽃 튀어 오르는 길 척추脊椎를 느끼는 그림자가 일렁이는 달빛 파도에 쓸리며 흐느
적거리고 있었어

사내들 깊은 밤 주막거리 화투짝 속살에 파묻혀 놀고 있는 동안 공산명월空山明月
밝은 달이 만삭滿朔의 몸 쏟아져 내리고 때때로 주인 버리고 오는 신발들이 보이는
시간
그 신발 뒷굽을 척척 빠져나온 발자국들
저희들끼리 우루루 나뭇잎 따라 구르다가
돌담장 호박넝쿨 아래로 숨어들어가 잠잠했어

이른 아침 백주에 궁둥이 까고 있는 호박덩이 몇몇에
어머니가 짚으로 엮은 똬리를 받쳐주다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오줌을 누셨어
그곳에 둥글고 하얀 어머니 궁둥이가 오래도록
내려앉아 있었어

밭두렁 무성한 잎새 바지 안에 잘 익은 오이들 매달려 있었지 이웃집 밭이랑에서
물오른 가지들이 불쑥불쑥 일어섰어 마음껏 부풀어 팽팽한 그것들과 함께 고추밭에
태양초 고추가 어찌 그리 뜨겁던지 퍼질러 앉은 밭고랑에
매끈매끈 고구마들이 얼굴 내밀고 있었어
저녁놀이 아궁이에서 왈칵 숯불을 뒤집어 놓을 때
어머니 볼 발그레 익어서 돌아오셨지

참 이쁘다 우리 어머니 태양초 고추 하나 머금은 듯 입술 붉은 어머니 고무신 탈
탈 털어낼 때쯤이면 명命 짧은 어머니의 사내가 내려놓은 울음들이 달려 나왔지
왈칵 기다림이 반가운 아이들
앞장세운 변성기의 아이 하나가
감나무 키 큰 그림자
사립문 밖 보내놓고 있었지

호롱불 밝혀야 어른어른 떠오르는 밥상
주춤주춤 아랫목이 내어놓은 보리밥 속에
언제 숨어들었나 고구마들 숨죽이고 있었지
등뼈를 쓰다듬는 어머니 능숙한 손길에
씨앗들 모두 빼앗기고 얌전해진
가지나물 오이냉채가 입맛을 당겼지

놋쇠숟가락으로 식구食口들이 밥을 먹고 있었어


[심사평] 자연에서의 삶 개성있고 건강하게 풀어

시대가 어려울수록 시는 빛나는 법이다.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시를 읽으면 행복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외국에서, 고등학생과 노인들까지 다양한 작품이 투고됐으며 남성들의 투고가 많아져 신춘문예 여성화의 비율이 다소 주는 현상도 보였다. 그러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신인의 패기와 개성,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잘 만들어진, 신춘문예의 새로운 전형을 이루는 시들이 많았다.

최종심에 '아버지, 꽃시를 심어요'(석지영·대구), '기차 떠나는 새벽'(이미정·울산), '스트랜딩 증후군'(김초영· 전남 순천), '무늬의 힘'(이현수·전북 진안), '권태'(김성순·울산) '타임캡술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정경화· 경남 함양)등 6편이 남았다.

'아버지 꽃시를…'과 '기차 떠나는 새벽'은 시적 성숙을 보여주었으나 시인의 힘이 부족해, '스트랜딩 증후군'은 신인의 힘을 가졌으나 시의 성숙이 부족해, '무늬의 힘'은 완벽한 시였으나 자신의 틀에 안주하고 있어 '권태'와 '타임캡슐에…'가 마지막 경합을 가졌다.

두 편의 시 모두 신인의 자격을 갖춘 시였다. '권태'는 물 흐르는 듯이 흘러가는 상상력이 빛났으며 '타임캡슐에…'는 싱싱한 상상력이 가득했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을 통해 '권태'가 시적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이나, 다소 산만하지만 좀 더 가능성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에…'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자연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풀어간 당선시는 시인이 오랜 시간 꾸준하게 독학 으로 개성적인 습작을 해왔음을 짐작케 해주었다.

또한 남성적인 힘과 당당한 시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어, 분명 자신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좀더 깊어지는 용맹정진을 바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나머지 분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최하림 정일근 최영철 (시인)


신춘문예 작품들
게시물 23건
No Title Name Date Hit
23 2008부산일보(동시) 기차가 떠… 08.02.03 1110
22 2008대구매일(동시) 벌들의 이… 08.02.03 947
21 2008 강원일보(동시) 자전거와 … 08.02.03 961
20 2008 조선일보(동시) 봄길 08.02.03 924
19 2008 대전일보(동시) 갈매기처럼 08.02.03 1192
18 2008 한국일보(동시) 2008 한국… 08.02.03 941
17 2007년 신춘문예(시) 추경희 07.02.22 1464
16 2007년 신춘문예(시) 추경희 07.02.22 1195
15 2007년 대구매일(동시) 추경희 07.02.22 1001
14 2007년 강원일보(동시) 추경희 07.02.22 1055
13 2007년 한국일보(동시) 추경희 07.02.22 1103
12 2007년 서울신문(동화) 추경희 07.02.22 1047
11 2007년 조선일보(동화) 추경희 07.02.22 981
10 2007년 부산일보(동화) 추경희 07.02.22 1121
9 2007년 부산일보(동시) 추경희 07.02.21 1120
8 2007년 문화일보(동화) 가을 07.02.21 1149
7 1964년 당선작 가을 07.01.28 944
6 2005년 신춘문예(시) 가을 07.01.28 1219
5 2006년 신춘문예(동시) 가을 07.01.28 1338
4 이전의 작품중에서 가을 07.01.28 986
 1  2  
가을펜은 시인 추경희의 홈페이지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을펜 이메일 관리 페이지